'와인의 바다'로 불릴 만큼 광활한 포도밭을 지닌 시칠리아(Sicilia)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섬으로, '와인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광활한 포도밭과 수천 년의 와인 제조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와인 산업의 핵심 지역 중 하나입니다. 시칠리아에는 약 110,000㏊의 포토밭이 있으며, 연간 와인 생산량은 약 5억 리터에 이르며, 이탈리아 전체에서 베네토(Veneto), 풀리아(Puglia)에 이어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규모의 와인 생산지로 꼽힙니다. 시칠리아에서는 무려 70여 종에 이르는 토착 포도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생산되는 와인의 30% 이상이 자연 친화적 유기농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저렴한 벌크 와인의 산지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1990년대 이후 고품질 와이너리들의 활약과 함께 이미지가 크게 쇄신되어 현재는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로 탈바꿈했습니다. 2011년에는 시칠리아 와인이 IGT에서 DOC로 승격되면서 품질 관리 체계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시칠리아 와인은 고대 페니키아인에 의해 포도 재배가 시작되었고, 중세 그리스 시대에는 지중해 전역으로 수출되는 최고급 와인이었습니다. 이후 로마 시대에는 황제들에게 바쳐지는 진상품이었습니다. 이후 1773년 영국 상인 존 우드하우스가 마르살라 와인을 발견하여 전 세계로 보급하면서 시칠리아는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의 메카로 군림했습니다. 20세기 중반, 대량 생산 위주의 협동조합들이 중심이 되어 '벌크와인(Bulk wine)' 생산지로 전락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소수의 열정적인 생산자들이 품질 혁명을 일으켜 오늘날의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시칠리아 와인 주요 품종 (Grape Varieties)
시칠리아의 가장 큰 자산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풍부한 토착 품종(Indigenous Varieties)입니다.
■ 레드 품종(Red Varieties)
• 네로 다볼라(Nero d'Avola)
'시칠리아의 왕'으로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품종입니다. 섬 전역에서 재배되며 짙은 루비색, 잘 익은 자두와 블랙베리의 향, 기분 좋은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이 특징입니다.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며 시칠리아 레드 와인의 중추 역할을 합니다. 장기 숙성을 거치면 부드러운 타닌과 상큼한 산미가 어우러지는 뛰어난 와인으로 발전합니다. 일상적인 테이블 와인부터 프리미엄 장기 숙성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생산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품종으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최근 '이탈리아의 피노 누아'라는 별명을 얻으며 급부상한 품종입니다. 주로 에트나(Etna) 화산 지대에서 재배되며, 옅은 색상에 비해 강인한 탄닌과 미네랄, 장미와 야생 딸기의 섬세한 향을 지닙니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우아함과 바롤로의 강건함을 겸비한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구조감이 뛰어납니다. 포도밭은 보통 해발 500~600m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1,200m를 넘는 곳도 있습니다. 척박한 화산 토양과 극단적인 일교차가 풍미의 밀도를 높이고 예리한 산도와 미네랄리티를 부여합니다.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 품종과 블렌딩하는 경우도 있으며, 에트나 로쏘(Etna Rosso) DOC의 주력 품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 프라파토(Frappato)
가볍고 산뜻한 레드 와인을 만듭니다. 꽃향기와 체리 향이 강하며, 네로 다볼라와 블렌딩되어 시칠리아의 유일한 DOCG 등급인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Cerasuolo di Vittoria)'를 구성합니다. 시칠리아 레드 품종 중 가장 섬세한 스타일로 꼽힙니다. 주로 시칠리아 남부와 남동부의 석회질·모래 토양에서 잘 자라며, 바디감이 가볍고 탄닌이 적어 더운 날씨에 즐기기 좋은 경쾌한 레드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 화이트 품종(White Varieties)
• 카타라토(Catarratto)
시칠리아에서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는 품종입니다. 과거에는 대량 생산용으로 쓰였으나, 최근 저온 발효 기술 등을 통해 감귤류 향과 기분 좋은 산미를 가진 고품질 화이트 와인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낮은 산미와 미디엄 바디감, 레몬 향이 특징이며, 마르살라 와인 양조에도 사용되는 주요 품종입니다.
• 그릴로(Grillo)
시칠리아의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화이트 품종으로, 최근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원래 마르살라(Marsala)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의 재료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선하고 풀바디한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주목받습니다. 복숭아, 열대 과일 향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의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높은 고도나 따뜻한 해변 근처에서도 잘 자라며, 스푸만테(발포성 와인)부터 디저트 와인,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인 마르살라(Marsala)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활용됩니다. 초록빛이 감도는 옐로우 컬러에 신선한 복숭아, 시트러스, 열대과일 아로마와 흰 꽃 향이 특징이며, 산도와 알코올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은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뜻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브랜디는 반드시 포도로 만든 술을 증류한 것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최대 15%라면, 주정 강화 와인은 15~22% 정도입니다.
• 카리칸테(Carricante)
에트나 화산의 화이트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에트나 DOC 화이트 와인의 핵심 품종입니다. 화산토에서 자라며 뚜렷한 미네랄리티와 섬세한 산도를 지닌 개성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 높은 산도와 찌릿한 미네랄감이 일품입니다.
• 지비보(Zibibbo/ Muscat of Alexandria)
지비보는 모스카토 달레싼드리아(Moscato d'Alessandria)의 지역명으로, 아랍인들이 시칠리아에 도입한 품종입니다. 판텔레리아(Pantelleria)섬에서 주로 재배되며, 건조한 기후와 화산토에 대한 강한 적응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향긋한 꽃향기가 일품인 품종으로, 드라이한 와인부터 판텔레리아 섬의 달콤한 디저트 와인(Passito)까지 다양하게 생산됩니다. 파씨토 디 판텔레리아(Passito di Pantelleria)는 이탈리아 최고의 스위트 디저트 와인으로 손꼽힙니다.
시칠리아 와인 주요 생산지역
■ 서부 시칠리아 : 트라파니(Trapani), 마르살라(Marsala), 팔레르모(Palermo), 아그리젠토(Agrigento)
시칠리아의 와인 생산량 중 약 80%는 서부 시칠리아에서 생산됩니다.
• 트라파니(Trapani) : 시칠리아 최대의 와인 생산 지역으로, 넓은 평야와 풍부한 일조량, 지중해성 기후가 포도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합니다.
• 마르살라(Marsala) : 18세기 영국 상인들에 의해 유명해진 주정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의 고향입니다. 역사적인 칸티네(Cantine, 이탈리아어 : 와이너리)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 메니피(Menfi) & 알카모(Alcamo) : 현대적인 대규모 와이너리들이 위치한 곳으로, 대중적이면서도 품질 좋은 화이트 와인과 네로 다볼라가 대량으로 생산됩니다.
■ 동부 시칠리아 : 에트나(Etna)
시칠리아 동북부에 있는 유럽 최대의 활화산 기슭으로, 최근 전 세계 와인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역입니다.
• 유럽 최고의 화산 와인 : 해발 400m에서 1,000m에 이르는 고지대 포도밭, 그리고 화산재로 구성된 독특한 토양은 와인에 독보적인 미네랄과 우아함을 부여합니다. '에트나 로쏘(Etna Rosso)'와 '에트나 비앙코(Etna Bianco)'는 시칠리아 와인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제품입니다.
■ 남동부 시칠리아 : 비토리아(Vittoria), 노토(Noto)
• 비토리아(Vittoria): 시칠리아의 유일한 DOCG 등급인 Cerasuolo di Vittoria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네로 다볼라와 프라파토를 블렌딩하여 만드는 이 와인은 시칠리아 와인 품질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붉은 모래 토양에서 자란 포도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풍미를 냅니다.
• 노토(Noto) : 네로 다볼라 품종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강렬하고 집중도 높은 레드 와인이 생산됩니다.
■ 화산섬 : 판텔레리아(Pantelleria)
튀니지 해안에 더 가까운 작은 화산섬으로, 지비보(Zibibbo) 품종으로 만드는 파씨토 디 판텔레리아(Passito di Pantelleria)가 이탈리아 최고의 디저트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시칠리아 와인 브랜드
■ 도나푸가타 (Donnafugata)
1851년 마르살라 지역에서 시작된 1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시칠리아 주요 지역에 총 461㏊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칠리아 와인 마케팅의 천재로 불리며, 예술적인 라벨과 뛰어난 품질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브랜드입니다.
· 안텔리아(Anthìlia) : 신선한 화이트 와인의 정석입니다.
· 밀레 에 우나 노테(Mille e una Notte) : 시칠리아의 밤을 형상화한 프리미엄 레드 와인입니다.
· 벤 리에(Ben Ryé) : 판텔레리아 섬에서 생산하는 스위트 와인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디저트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플라네타(Planeta)
돈나푸가타, 타스카 달메리타와 함께 시칠리아 3대 프리미엄 와이너리로 꼽힙니다. 1995년 첫 제품을 선보인 이래 시칠리아 와인의 이미지를 혁신한 선구자적 와이너리로, 현재 시칠리아 서부 멘피(Menfi)를 중심으로 노토, 에트나, 비토리아, 카포 밀라쪼 등 여섯 곳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와인을 양조하고 있습니다. Wine Spectator 100대 와인에 수차례 선정되었으며, 대표 제품으로는 플라네타 샤르도네, 플라네타 코메타, 플라네타 시라 등이 있습니다.
■ 타스카 달메리타(Tasca d'Almerita)
19세기부터 운영되어 온 시칠리아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입니다. 시칠리아 내륙의 체르다(Cerda) 지역 카스텔로 달메리타(Castello d'Almerita) 포도원을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으며, 내륙 고산 지대의 '레갈리알리(Regaleali)' 에스테이트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시칠리아 와인의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시칠리아 토착 품종과 국제 품종을 아우르는 폭넓은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 쿠수마노 (Cusumano)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이고 깔끔한 스타일의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는 생산자입니다. '샤구아(Sagana)'와 같은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 와인으로 평론가들의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는 특정 단일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하여 만든 와인을 의미합니다.
■ 테레 네레(Terre Nere)
에트나 화산 북사면에서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품종으로 세계적 수준의 와인을 생산하는 에트나 와인의 대표 와이너리입니다. '검은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화산토의 개성을 와인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코스(COS)
비토리아 지역의 자연주의 와이너리로, 암포라(옹기)를 이용한 자연 양조 방식으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Cerasuolo di Vittoria) DOCG 와인의 명가 중 하나입니다.
■ 베난티(Benanti)
에트나 화산 지대에서 토착 품종의 잠재력을 세상에 알린 선구자적 와이너리로, 에트나 와인 르네상스의 시작을 이끈 곳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칠리아 와인은 에트나의 차가운 미네랄부터 남쪽 해안의 뜨거운 태양을 머금은 묵직한 레드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다양한 맛을 자랑합니다. 건조하고 바람이 강한 기후 덕분에 화학 비료 없이 건강한 포도를 재배할 수 있어 유기농 와인의 선두주자이기도 합니다. 화산이 불꽃과 지중해의 바람, 그리고 수천 년의 역사를 담은 한 잔의 와인에서 시칠리아섬의 매혹적인 정수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